집 꾸미기의 세계로 입문해보자
집 꾸미기의 세계로 입문해보자
스페인으로 건너온 2021년 5월부터 지금까지 쭉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올해 5월에 계약서에 명시된 5년을 꽉 채우게 되었고 상호 합의 하에 같은 계약 조건으로 2년 더 연장이 가능해 큰 변수가 없는 한 당분간은 계속 이 곳에 머무를 계획이다. 이 집에서 이렇게 오래 살 걸 모르지 않았는데도 돌아보면 집을 꾸미는 일에는 참 관심이 없었다. 풀옵션으로 들어온 집이었고 필요에 따라서 침대 매트리스와 스탠딩 데스크를 새로 들이고, 남자친구 부모님 집에서 쓰지 않는 소파와 소형 벽걸이 TV를 추가로 들여오는 정도가 전부였다. 어차피 월세로 사는 집이니까, 모든 공간에 가득 차 있는 가구와 수없이 많은 의자들이 너무 싫지만 집주인 허락 없이 함부로 버릴 수 없으니까, 따라서 새로운 가구를 들이기도 애매하니까 같은 이유들로 필요 이상의 것들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름휴가 동안 머물렀던 집은 넓고 채광도 뷰도 훌륭한, 정원이 딸린 2층 단독주택이었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이런 멋진 집에 살다니 그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너희 집에 더 애정을 가지고 꾸며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문득 어쩌면 한 번 시도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두달 전쯤 방문한 친구 집도 떠올랐다. 우리집보다 면적 자체가 좁은 데다 아기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기용품들로 더 정신이 없었는데도 그런 객관적인 사실보다 친구들과 집이 착 붙는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두 사람의 생활 스타일대로, 취향대로 손을 탄 흔적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특별한 인테리어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여러 크기로 인쇄한 사진들과 직접 그린 그림, 여기저기에서 받은 메모나 카드, 캘린더 등이 적재적소에 놓여 있었다. 사실 그 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내 공간에 대한 나의 완고한 무관심함에 금이 갔던 것이. 그렇게 6년차가 되어서야 우리는 집에 아주 약간의 변화를 줘 볼 심산으로 만만한 이케아에 가게 됐다.
일단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로 타겟을 정하고 쇼룸들을 둘러 보면서 어떤 것들을 해볼 수 있을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크게 아예 없어서 새로 들여볼 것, 있긴 하지만 바꾸면 좋은 것으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그 안에서도 덩치나 금액이 큰 것과 작은 것으로 한 번 더 분류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 아예 없어서 새로 들여볼 것 + 덩치/금액이 큰 것: 식물, 러그, 스탠딩 조명, 그림(액자)
- 아예 없어서 새로 들여볼 것 + 덩치/금액이 작은 것: 시계, 거실장에 둘 미니 오브제, 캔들
- 있긴 하지만 바꾸면 좋은 것 + 덩치/금액이 큰 것: 커튼, 소파
- 있긴 하지만 바꾸면 좋은 것 + 덩치/금액이 작은 것: 소파 쿠션, 담요
100유로 안팎으로 오늘의 쇼핑 상한선을 정했고 2미터 쯤 되는 식물과 바스켓, 소파 뒤 텅 빈 벽에 걸어둘 그림 두 개를 집에 들이기로 했다. 이런 것들을 사는 우리가 꽤 낯설다고 느껴졌다. 필요가 아닌 공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사본 일이 거의 없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그런데.. 고작 세 개의 물건을 들였을 뿐인데 이렇게 이 집이 다르게 느껴질 줄이야! 당장 내일 다시 이케아에 가서 커튼과 조명과 러그도 몽땅 사오고 싶다는 빅토르를 보니 나만큼 이 친구에게도 신선한 충격인 것이 틀림 없다. 집 꾸미기의 세상이라니, 낯설지만 설레는 입문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