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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살이 6년차의 스페인 친구 만들기

스페인 살이 6년차의 스페인 친구 만들기

언어 과외를 하다보면 종종 친구와 대화할 때보다 더 솔직하고 더 나다운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게 될 때가 있다. 작년에 스튜어트와 하던 영어 과외를 그만둘 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장 가깝고도 먼(물리적으로도 일단 멈이 확실했다.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스튜어트는 대한민국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양국과 아무 관계없는 영어 때문에 만나게 된 것이 돌아보니 웃긴 포인트.) 친구와 즐거운 대화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아쉬움이 먼저 다가왔다. 8월 초부터는 이고르와 스페인어 과외를 시작했다. 이것도 웃긴 게.. 이고르는 브라질에 살고 러시아 사람이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더군다나 서로의 모국어도 다른 사람에게 언어를 배우는 건 매우 독특한 케이스.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너 달 쯤 지나서 제대로 리뷰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늘 수업에서는 스페인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졌던 기대와 살고보니 달랐던 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전에는 영국 브라이튼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친구 사귀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좋은 관계들이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는 영국에 있을 때보다도 더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스페인의 모든 것을 처음 접했고 길 위를 함께 걸은 사람들도, 스쳐 지나간 많은 동네 속 현지인들과도 아주 쉽게 대화를 시작했다. 많은 순간들이 그림처럼 마음 속에 남았다. 환경적 특수함을 차치하더라도 어쩐지 '영국인'보다는 '스페인 사람들'이 왠지 덜 벽을 칠 거라는 아무 근거 없는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스페인 사람'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이주 초반 친구들의 대부분은 어학당에서 만났다.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호주, 프랑스, 미국, 러시아, 불가리아 친구들. 또 그 친구들이 그들의 친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리는 사람들이 내 주변을 이루고 있었다면 그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들 너무 다른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시야가 트이는 경험이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들을 인터뷰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볼까 생각할 정도였다(왜 안 했을까? 아쉽다!). 하지만 모두 스페인으로 잠깐 또는 오래 살기 위해 건너온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이 주는 다이나믹에 신나하면서도 어쩐지 약간의 초조함이 있었던 것 같다. 스페인에 살면서 스페인어를 말하는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었다. 언어 그 자체를 배우는 수업 시간과 남자친구와 이야기할 때, 그리고 아주 기초적인 일상생활 외에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스페인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일도 친구들과의 대화도 모두 영어로 이루어졌고 이 때부터 영어책도 사보기 시작했다. 스페인에 사는데 스페인 친구와 스페인어를 말하지 않는 나, 괜찮은가요? 이런 글이라도 써야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스페인 회사에 취업하면서 한 번 더 일상을 채우는 인간관계 풀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일하는 조직과 팀 특성상 세계 각국에서 마드리드 오피스로 온, 또는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 팀 헤드는 베네수엘라 사람이었고 직속 매니저는 영국인이었으며 팀에는 브라질, 포르투갈, 일본, 인도, 프랑스, 미국, 루마니아,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인도, UAE 오피스에 있는 프로젝트 매니저들과 주 업무를 함께 했다. 어렸을 때 꿈꿨던 말 그대로 글로벌한 환경이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러 가거나, 팀 런치를 나가거나, 전사 파티 등에 참석하면서 이 조직에 속한 사람 하나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크게 얻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회사 동료에서 친구가 되는 것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일이었다. 퇴사한 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전 직장 동료는 두세명 정도다. 역시 회사를 다니는 내내 주 언어는 영어로 지속되었다. 스페인어를 말하고 스페인 문화에 내가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일을 함께 해줄 스페인 친구는 그곳에서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일 년 간 석사생활을 하면서 진짜 '친구'라고 할 만한 스페인 친구를 사귀게 됐다. 100% 영어 과정이어서 수업 시간도, 과제나 발표를 하는 시간에도 모두 영어를 사용한 것은 변함 없었지만 (게다가 많은 동기들이 스페인어를 못 하는 외국인이었다) 스페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부모님과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자친구의 친구 말고 그냥 내 친구라는 것이 주는 의미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이 곳에서 나만의 사회적 안전망, 나의 커뮤니티를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것은 근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심사다.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나에 대한 히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온 한국의 친구들, 해외에서 사는 여성들이라는 공통점으로 맺어진 지인들, 스페인에서 사는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관계들이다. 하지만 스페인 살이 6년차, 스페인 사는 스페인 친구 사귀기는 여전히 가장 큰 희망사항이고 쉽지 않은 과제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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