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리스본 찍먹 - 비파나와 LX 팩토리
리스본 찍먹 - 비파나와 LX 팩토리
지금 생각해보니 리스본에 간 이유는 애초에 하나 밖에 없었다. 바로 비파나와 수프를 먹기 위해서! 비파나는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양념해 큰 팬에 내내 졸이다가 주문하면 빵 사이에 넣어주는 포르투갈의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다. 8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기념하며 혼자 겨울의 포르투와 리스본을 여행했을 때, 빅토르가 추천해준 어떤 오래된 바에서 뜨끈한 수프와 비파나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여지껏 생생하다. 동네에는 아무리 뒤져봐도 마땅히 비파나를 먹을만한 곳이 없었고 리스본은 차로 고작 40분 거리이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연 작은 키오스크 같은 바는 30대의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가게 주인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얼굴. 눈이 빛나고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이 숨겨지지 않는 사람들. 이미 반쯤 성공했다는 확신이 슬그머니 들 때의 기쁨이 맴돌았다. 비파나도 수프도 예상했던 것처럼 맛있었다. 허겁지겁 코를 박고 먹는 빅토르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웃겼다. 이게 그렇게도 먹고 싶었구나!
남자친구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유럽 도시 TOP3 안에 드는 도시, 그리고 나에게는 8년 전 완전한 혼자 여행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던 도시인 리스본을 결혼 직전에 둘이 함께 오게 되어서 진짜 이거 '프리 허니문'이라고 부를 만한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려던 카페 앞에는 대기하는 사람들로 줄이 늘어서 있고, 관광객과 툭툭으로 꽉 차 북적거리는 도시를 보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겨우 며칠 한적한 곳에서 머물렀다고 이렇게 실시간으로 기가 빨릴 줄이야. 세계 100대 커피숍이라고 하니 테이크아웃으로나마 플랫 화이트를 한 잔 마시고(우유 스팀이 감동적이었다), 가까운 호텔 루프탑에서 진저 에일과 레모네이드(포르투갈에 올 때마다 스페인에서는 흔하지 않은 진저 에일/진저 비어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여긴 수제 레모네이드도 가게마다 있다!)를 마시며 경관을 눈으로 담고, 가려던 한국 치킨집이 있었지만 서둘러 리스본을 빠져 나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나온 만큼 센트로 밖에서 갈만한 곳들을 급하게 물색했다. 빅토르가 고른 곳은 과거 방직공장을 개조해 지금은 서점, 식당, 상점 등으로 채워진 LX 팩토리. 내가 찾은 곳은 벨렝 지구의 현대미술관 MAC/CCB. 주차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어도 이럴 때 자차 여행은 큰 도움이 된다. 여유롭게 두 곳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동네로 복귀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LX 팩토리는 아마 오픈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분명 더 독특하고 근사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금방 들었다. 지금은 각종 스트리트 브랜드와 편집샵 등이 입점해 있는데 초반에는 독립 예술가들의 작은 아뜰리에가 주를 이뤘고 길가에 그림을 내놓고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크고 멋진 서점에서 책도 두 권이나 사고 무화과와 프로슈토를 얹은 맛있는 피자도 먹고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쇼핑하는 일도 즐거웠다. MAC/CCB는 규모가 꽤 크고 공간도 너무 잘 갖춰져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벨렝 지구에 왔을 때 대부분 들르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나 벨렝 탑, 에그타르트 가게도 바로 근처라서 이 근처를 통째로 산책하기에도 좋아보였다. 컬렉션의 경우 보통 특별전시를 상설전시보다 선호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미 꽤 지친 편이라서 특별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리스본 센트로에서 도망 나올 때만 해도 약간 걱정했건만 뽈뽈대며 보낸 관광의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