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숨겨진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도시 vs 해안가 작은 마을
숨겨진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추천받은 스페셜티 카페에서 먹으며 시작하는 하루. 스페인 로스터리인 올라 커피의 원두도 보이고 사워도우를 직접 굽고 치아푸딩과 시나몬 번 등을 판매하는 자그마한 카페였다. 주문할 때부터 커피를 다 마시고 나올 때까지 직원과 손님 모두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다. 카드 결제 대신 현금 결제나 레볼루트 이체만 가능한 점도 뭔가 낯설었다. 어제 잠깐 들렀던 카페도 꼭 마드리드나 코펜하겐에서 마주할 것만 같은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스트로베리 말차 라떼와 하우스 콤부차, 대니쉬 브렉퍼스트(휩 버터와 콩포트, 반숙란과 마일드한 치즈가 보통 포함된다)와 터키쉬 브렉퍼스트(라브네와 칠리오일, 수란, 절인 양파 등이 보통 함께 나온다)를 메인 메뉴로 팔았다. 큰 유리병에는 엑스트라 비용을 내면 추가할 수 있는 김치가 담겨있었고 아래층에는 빈티지 샵이 운영되고 있었다. 큼지막한 공용 책상에는 헤드폰을 낀 사람들이 각자 랩탑을 하나씩 끌어안고 일을 하고 있었다.
바다로 내려가는 길에는 유기농 샵을 우연히 발견했다. 한켠에서 운영되고 있는 카페에서는 비건 아침식사와 유기농 티를 팔고 구석구석마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에 대한 안내판도 놓여져 있었는데 요가와 명상, 센소리얼 테라피, 사우나와 아이스 배쓰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대략 3-5년 전쯤 거의 정점을 찍지 않았나 했던 웰니스 커뮤니티가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한 때는 나도 무한히 동경하고 부지런히 쫓았던 것들. 어제에 이어서 분명 이곳으로 단기/장기적으로 이주해 온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이거나 직접 일터로 나가지 않아도 운영되는 사업체를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갈 정부가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리스본은 그들의 성지 같은 도시가 되었고, 차로 40분 정도면 서핑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이 곳은 자연스레 함께 발전했을 것이다.
도시 vs 해안가 작은 마을
점심을 기준으로 두 곳의 해변에서 내내 시간을 보냈다. 수영복 위에 티셔츠를 대충 걸치고 돗자리와 파라솔, 선글라스, 읽을 책과 간식 조금이면 충분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쏜살같이 간다. 낮잠 자고, 파도 소리를 듣고, 책도 몇 페이지쯤 뒤적거리고, 주변을 살펴보고, 너무 더우면 물 속에 풍덩 빠졌다가 다시 햇볕에 몸을 말리기를 무한 반복한다. 쨍한 햇볕 아래에서는 스마트폰 액정을 보기가 불편하다. 내내 손에서 떨어질 일 없던 이 작은 기계가 이제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란다. 이완된다는 게, 긴장이 저절로 풀어진다는 게 무엇인지 바로 느껴지는 시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저녁 산책을 하면서 젤라또를 사먹고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반신욕을 하면서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의 짜릿함. 이렇게 살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바다 근처에서 살고 싶다.
도시에서 아득바득 살아남는 것에 지쳤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이런 해안가로 훌쩍 이사 가겠다는 결정이 쉽지만은 않다. 직장(외국인이라면 더욱이), 공항을 포함한 교통시설과 병원 및 편의시설에 대한 접근성,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더 많은 기회들이 도시에 있다. 휴가 때마다 찾는 해안가 마을은 휴가라는 이유로 더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름인 지금은 이 곳이 천국 같지만 겨울이 된다면?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덮친다면? 이런 문제들을 모두 고려하기 시작하면 생각해볼 거리는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도시에서의 장점들은 분명 이 해안가 작은 마을에서는 거의 누릴 수 없는 것들일 텐데, 내가 그것들을 하나도 바라지 않게 된다면? 그게 더이상 나에게 더 많은 장점으로 다가오지 않고 다른 것을 우선순위에 두게 된다면?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