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아득하지만.. 매일을 가득 채워 살자
스페인으로 넘어왔던 2021년 5월부터 지금까지 쭉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당시는 아직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을 때라 월세도 매매도 지금보다는 매물이 많았고 그래서 비교적 현실적인 가격대에 집을 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동네가 아쉽기는 했어도 이 가격대에 이 크기의 집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5년 전인 그 때에도 천운처럼 느껴졌는데. 첫 계약이 만료된 올 5월 이후에도 별도의 인상 없이 계약을 연장해주신 집주인 할머니 덕분에 이 근처 평균가의 반값 정도 밖에 안되는 월세를 내며 아직까지도 이 곳에서 맘 편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가 함께 꾸려간 시간의 바탕에 집이 항상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고 주거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온 몸으로 배웠다. 언젠가 계약은 끝날 테지만 정말 오래오래 이 집과 집주인 할머니에게 감사 드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지금 사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종의 내 '꿈의 동네'가 있다. 공원과도 센트로와도 멀지 않고 주민용 주차장, 놀이터, 수영장을 갖춘 아파트 단지(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한국의 초대형 아파트 단지와는 아예 다른 형태인)가 많고 그래서 근처에 마트, 미용실, 빵집, 세탁소 등의 생활편의시설이 발달되어 있는 동네다. 중요한 길 근처로는 지어진지 꽤 된 아파트들이 있어서 어르신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들이 거주하고 5분 정도 더 들어가면 부동산 기업이 월세를 받을 목적으로 커뮤니티 공간, 루프탑, 수영장, 헬스장을 갖추어 신축한 콘도미니엄들이 있어서 아기들이 어린 젊은 부부들이 더 자주 보인다. 상업시설이나 오피스들이 없는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동네라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늘 좋은 기억을 남기는 동네. 돌아보면 꽤 오랫동안 남자친구에게 언젠가는 이 동네로 이사오고 싶다고 말해왔던 것 같다.
산책 삼아 이 동네에 있는 카페에 오게 되면서 미래에 우리는 어디에서 살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가볍게 부동산 앱을 켰을 때 가장 상단에 뜬 것이 신축 콘도미니엄의 방 한 개짜리 집이었는데 월세가 1,450유로. 내년이나 내후년쯤 이사를 가야할 시점이 되면 이 동네와 단지가 주는 베네핏을 고려했을 때 큰 문제없이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만약 아기가 생기면 어떡하지? 방 한 개짜리 집에서 아기가 몇 살때까지 지낼 수 있을까? 단번에 신생아 시기만 지나도 방이 최소한 두 개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편으로는 이만큼의 월세를 우리는 몇 살까지 지불하면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피어오른다. 주거 목적의 자가 매매가 당연히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경제적이지만 모든 제도를 활용해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을 보유하기까지 현실적으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인지 따져보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5년 전과 비교해보면 분명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소기의 성과들을 많이 일궈냈다. 한결같이 성실하게 일하고 저금하면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온 빅토르에게 좋은 기회들이 찾아와 준 덕분이었다.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 나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커리어를 이어왔고 연봉협상 때마다 확실한 인상을 이끌어낼 만큼 열심히 일했다. 이따금씩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쩔 수 없는 박탈감이나 묘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용한 것이 없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5년 전 우리는 지금보다 한참 모자르게 벌면서도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개념 자체를 생각해본 적조차 없을만큼 그저 막 시작된, 둘로 살아가는 하루들에 한껏 신나 있었다.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매일을 기쁘게 채우는 일만으로도 인생이 가득해질 수 있다는 걸, 그 시기를 통해서 알게 됐다.
오늘처럼 꽤 멀리 떨어진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 문득 아득하게 느껴질 때마다 충만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뇌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하루들이 모여서 미래를 만든다는 그 상투적인 말이 진정 어떤 것인지 나는, 우리는 지난 5년을 통해서 배웠으니까.